구자명 작가는 비물질적인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체제(도식)를 실물세계에서의 물리적인 대상으로서 치환시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예술적 조형으로서 이를 사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프트 머슬›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음식의 검색-주문-결제-배송을 일원화시킴으로써 배달문화를 가속화시킨 ‘배달 앱’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배달 앱을 해킹하여 소스 코드로 변환 후 데이터 파일로 도식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비물질적인 컴퓨터 언어로 구성된 소프트웨어의 내부 구조를 “조형적으로” 분석한다. 분석된 결과는 그래픽 디자인으로 시각화되는 한편 입체적 형태로써 실재세계에 물리적으로 구현된다.
앱 알고리즘이 현실에서 조형적인 물질적 대상으로 치환되는 경험을 통해 본 작업은 배달앱이 만들어 낸 식문화와 오늘날 먹기에 관한 인식을 재고토록 한다.
작가 소개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구자명은 기술 경험으로 변화되는 사물 인식의 차이에 관심을 가지고 시각예술 창작 안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컴퓨터 코드로 구성된 세계에서 소프트웨어가 지닌 형태에 대해 질문하며 이에 대한 미학적 성질을 규명하는 조형론을 구축하고 있다.
개인전 «소프트웨어의 성장과 형태에 대해»(2021), «웹사이트 구조의 편집 방법 개발»(2020), «PPB»(2018)를 통해 고유한 작업 방식을 공고히 다지고 있다.
과정 기록
구자명은 동시대 기술 경험이 가져오는 인식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시각예술 창작 안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소스 코드로 구성된 세계에서 소프트웨어가 지닌 형태에 대해 질문하며 이것이 가진 미학적 성질을 규명해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중이다. 금천문화재단과 진행하는 전시에서 위 주제를 응용하여 기획의 키워드인 ‘먹기’와 연결된 체계를 관찰하고, 이때 수집한 정보들을 해석해 보려고 한다.
‹Soft Muscle›은 식(食) 문화의 변화를 가져온 소프트웨어, ‘배달 앱(APP)’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다. 2011년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의 출시 이후 인터넷을 통해 온/오프라인이 연결-교환-전환되면서 외식업계는 이커머스(e-commerce) 플랫폼과 결합해 디지털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였다. 또한 2019년 선포된 팬데믹의 여파로 ‘앱’은 오프라인의 역할을 겸하며 일상 안에서 인간의 신체와 신분까지도 대리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앞선 도구임을 자처하는 ‘앱’은 무엇일까? 해당 질문을 기초 삼은 이번 탐구의 과정은 특정 기술과 연루된 지금의 상황을 비판하기보다, 앱의 구조를 살펴 얻은 소프트웨어의 정보들을 통해, 역으로 개인 혹은 세계와 맺은 관계를 반추해 보려는 시도이다.
온라인 마켓 ‘구글 플레이’에서 국내에서 사용하는 배달 앱, ‘배민(배달의 민족)’, ‘요기요’를 다운로드해 디컴파일(Decompile) 프로그램을 활용해 패키징 전의 소스 코드 파일로 변환했다. 이후 데이터 파일 단위로 분해된 해당 앱을 분석하고 파악한 구조를 시각 이미지로 도식화했다. 이 과정 안에서 특히 관심 있게 봤던 부분은 GPS를 활용하는 코드의 구조였다. 디지털 안에서 수치화된 위도와 경도의 값을 읽어 들여 대상의 위치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이 기능은 소비자와 판매자를 이어 비대면 유통을 가능케 만드는 이커머스의 핵심 동력이다. 이것은 앱을 켜는 순간부터 메뉴의 선택, 배송까지의 디지털 유통 전 과정에 동참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이며, 실시간으로 실물 세계의 특정 위치를 앱 안으로 동기화해 물리적 거리를 가상공간에 접합 시키는 객체이다.
스택 오버플로(Stack Overflow)는 개발자 커뮤니티로 프로그래밍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온라인상에서 주고받는 웹사이트이다. 이곳은 자체 사이트에 업데이트되어 있는 2000만개 이상의 소스 코드를 누구나 특별한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읽고, 복제 및 개조, 재배포를 가능하게 함으로서 여러 사람들이 고치고 쓰며 보다 빠르게 버그를 개선하는 오픈 소스의 기본 이념을 구현하고 있다. 때문에 이 사이버스페이스는 불완전한 코드들이 실시간으로 유통과 변이를 통해 배양되는 인큐베이터쯤으로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배달 앱을 개발하던 한 유저가 올려놓은 GPS 위치값 활용에 대한 코드를 발견했고, 이 코드의 형태를 추적했다.
사이버스페이스에 놓인 소프트웨어의 형태를 찾고, 실물 세계로 불러들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과정을 추동한 시작점이었던 먹기, 지금의 식문화와는 어떤 관련이 있었을까? 우리가 앱과 같은 소프트웨어에 익숙해지면서 변화를 맞는 것은 무엇일까? 유추해 볼 만한 것 중 하나는 만남이 잦아질수록 현실과 접붙어버린 세계에서 소프트웨어는 실물과 관계 맺기 위해 더 단단한 모양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